부동산으로 독립운동?…북촌·익선동 만든 원조 디벨로퍼[박윤선의 부동산 TMI]

<21> 일제시대 디벨로퍼로 활동한 정세권
대형 한옥 쪼개 서민 주거지로 탈바꿈
조선인 거주지 사수해
북촌에 연내 기념관 개관

  • 박윤선 기자
  • 2020-09-27 07: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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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으로 독립운동?…북촌·익선동 만든 원조 디벨로퍼[박윤선의 부동산 TMI]
/일러스트=진동영기자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자리 잡은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작은 한옥에 개성있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들어서며 이 시대의 힙플레이스로 재탄생한 종로구 익선동. 서울 한강 이북에는 이러한 한옥 밀집 지역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데요. 한국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이들 한옥 밀집 지역이 사실은 꽤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조선 시대가 아닌 일제 시대에, 그것도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말입니다.

◇북촌·익선동 만든 ‘건축왕’ 정세권 =북촌과 익선동은 물론 인사동과 혜화동, 성북동 등지에서 볼 수 있는 한옥들은 사실 192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근대의 건축물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인 한옥이 조선시대가 아닌 일제시대에 대거 건축됐다니, 약간 의외죠? 이렇게 일제시대에 한옥이 집중적으로 지어진 배경에는 ‘건축왕’으로 불렸던 기농 정세권(1888∼1965) 선생이 있습니다.

정세권은 1920년대부터 서울의 중심지에 한옥 밀집 지역을 만든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자)였습니다. 그는 1919년, 20칸 한옥 두 채 가격인 2만 원을 가지고 상경해 건양사를 세우고 건설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좋은 땅과 주택을 일본인들이 사들이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그는 서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경복궁 인근과 종로에 조선의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작은 한옥집, 이른바 ‘조선집’을 단지 형태로 조성해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의 첫 작품이 바로 익선동 166번지입니다.

부동산으로 독립운동?…북촌·익선동 만든 원조 디벨로퍼[박윤선의 부동산 TMI]
연노랑색으로 표시된 곳이 정세권 선생의 한옥 단지 개발지들이다. /제공=서울시

◇ 뛰어난 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 = 정세권은 뛰어난 사업가였습니다. 주택 매입 자금이 부족한 서민들을 위해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분납 서비스를 제공했고, 집을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임대를 해줬습니다. 임대료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전월세를 낮춰서 받는 일종의 주거 복지 사업도 전개했습니다. 정세권은 이사를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자신이 지은 주택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신축 건물에서 거주했던 것인데요. 많게는 1년에 10여 차례 이사를 했다네요.

일제시대 당시 많은 자산가들이 일제에 부역한 것과 달리 정세권은 신간회와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어학회 등을 후원했습니다.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에는 회관을 지어 기증하고 각종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결국 1942년, 정세권은 체포돼 모 고문을 당했으며 1943년에는 경제범으로 몰려 동대문경찰서에 수감, 토지를 몰수당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공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정세권 선생에 관한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종로구에서는 ‘북촌한옥마을·돈미약국’ 마을버스 정류장의 이름을 ‘북촌한옥마을·정세권활동터’로 바꿨습니다. 아울러 연내에 북촌에 정세권 기념관이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동산으로 독립운동?…북촌·익선동 만든 원조 디벨로퍼[박윤선의 부동산 TMI]
종로구 익선동 전경./서울경제DB



◇ 서민 거주지에서 애물단지, 핫플레이스로
= 개발 당시 조선집은 일제 강점기 조선 서민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당시엔 생명줄 같던 이 한옥들은 서울 곳곳이 개발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노후 저층주거지’로 불리게 됐죠. 일각에서는 ‘정통성’이 없다며 철거해도 문제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한옥이라고 인식하고, 부르고 있는 정세권의 ‘조선집’들은 사실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집들은 함석과 타일 등 현대식 자재를 사용했고, 구조도 전통 한옥과는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촌과 익선동 등지의 조선집은 살아남았고 이제는 ‘뉴트로’ 바람을 타고 핫플레이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정세권의 조선집을 보며 현대의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고 볼품없고 전통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 시대 살아남기 위해선 조선집이 최선이었듯, 지금의 아파트나 빌라촌도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흔적일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보기 싫다고 할지 몰라도 집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산다는 목적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또 누가 압니까. 먼 미래 2020년의 주거지가 핫플레이스로 재탄생할지.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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