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y 실시간

"SK, LG 배터리 기밀로 10년 벌었다" 돌직구 날린 美 ITC [재계 인사이드]

■美 ITC, 최종판결 의견서 공개
"11개 카테고리 내 22개 비밀 침해"
LG "영업비밀 침해 명백하게 확인"
'10년 수입금지' ITC 판결 비판한 SK
"실체적 검증 안 된 판결" 불복
바이든 수입금지 거부권 행사 기대
합의 난망...LG "SK, 판결 존중해야"
양측 합의금 견해차도 兆 단위

  • 한재영 기자
  • 2021-03-06 09:00:16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4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 의견서를 공개했다. ITC는 지난달 10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인정된다며 앞으로 10년간 미국 내 배터리 수입·생산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최종판결을 내렸다. 의견서에는 SK이노베이션이 침해한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목록이 명시됐다.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도 적나라하게 기술됐다.


96페이지 분량의 영문 의견서가 공개되자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다”며 반겼다. SK는 “영업비밀 침해의 실체적 검증이 결여 된 판결이다.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ITC 판결을 공개적으로 부정했다. 지난달 최종판결이 나왔을 당시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실질적 판단이 이뤄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던 입장보다 다분히 공세적이다.



'SK, LG 배터리 기밀로 10년 벌었다' 돌직구 날린 美 ITC [재계 인사이드]

의견서에 어떤 내용 담겼나

ITC 의견서에는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는 과정과 구체적인 증거인멸 행위, 침해 목록, 심지어 왜 수입금지 기간을 10년으로 결정했고, 미국 완성차 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까지 담겨있다.


무엇보다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영업비밀 22개를 모두 인정했다. ITC는 “SK가 LG로부터 획득한 22개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10년 내 해당 영업비밀 상의 기술을 독자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SK가 LG의 영업비밀 기술을 10년 내에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의견서에는 ITC 산하 기구인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수입금지 기간을 5년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이를 거부했다며,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가 명시돼 있다. ITC는 “LG의 기초 개발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수입금지 기간 10년이 과도하지 않다(not unduly)”고 했다. SK가 LG 영업비밀을 침해함으로써 LG가 투자한 10년의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의견서에서 ITC는 SK가 침해한 것으로 인정되는 LG의 영업비밀 22개를 포괄하는 11개 카테고리 목록도 공개됐다. △전체 공정 △원자재 부품 명세서(BOM) △선분산 슬러리 △음극·양극 믹싱 및 레시피 등이다.



'SK, LG 배터리 기밀로 10년 벌었다' 돌직구 날린 美 ITC [재계 인사이드]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내용을 기술한 부분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부서 관리자가 “‘L’ 회사(LG에너지솔루션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에서 가져온 문서를 숨기거나 없애라. 이 이메일도 저장하면 안 된다(Documents you took from the ‘L’ company’ and please don’t save this email as well!)”고 지시한 사실이 의견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ITC는 “증거인멸은 고위층(high level)이 지시해 부서장들에 의해 전사적으로 수행됐다”고 명시했다. ITC는 “SK의 문서 삭제, 그리고 문서 삭제가 정기적 관행이라는 변명, 문서 삭제 은폐 시도를 노골적으로 악의(flagrant bad faith)를 가지고 자행했다”고 판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개발, 생산, 영업 등 배터리 전 영역에 걸친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명백히 인정된 것”이라고 총평했다.


SK “영업비밀 침해 확인 안돼” 되풀이

SK이노베이션은 반발했다. 자신들에 수입금지 10년 조치를 내린 ITC의 최종판결 자체를 문제 삼았다. 지난달 10일 최종판결이 나왔을 때 ‘유감’이라고 했던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LG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한 실체적인 검증 없이 소송의 절차적 흠결을 근거로 결정했다”면서 “그 결정은 여러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ITC는 영업비밀 침해라고 결정하면서도 여전히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우리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저 증거인멸(SK는 ‘절차적 흠결’이라고 표현)을 근거로 내린 판결이라 패소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ITC의 법적 의무와 판사가 정한 절차적 일정을 노골적으로 무시(callous disregard) 했다”며 의견서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SK이노베이션의 한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불필요한 문서를 삭제하는 캠페인을 하는데, 이를 증거인멸이라고 하는 LG 주장을 ITC가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LG의 기술이 없었으면 10년 간 기술 개발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은 필요 없다”고 일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0여년 간 독자 개발을 바탕으로 이미 2011년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美 ITC에 날 세운 SK, 무슨 전략일까

SK이노베이션은 왜 미 대통령 직속의 준(準)사법 행정기관인 ITC의 판결마저 공개적으로 부정한 걸까.


ITC 의견서가 공개된 이날 SK이노베이션이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 일부에서 그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을 듯하다.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에서 “ITC 결정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대통령 검토(Presidential Review) 절차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거부권 행사를 강력하게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거부권 행사’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ITC 최종 판결 이후 60일 이내에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내릴 수 있는 비토권을 의미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및 일자리 확대 정책에 부합한다는 점을 어필하며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SK이노베이션이 ITC 판결까지 정면 비판하며 이를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연계지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ITC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잘못된 ITC 판결로 수입금지 조치를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11일까지 SK이노베이션에 내려진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때까지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ITC의 조치에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ITC는 SK이노베이션이 기존에 수주해 놓은 포드와 폭스바겐용 배터리에 대해서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즉각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이 기간 다른 배터리 공급 업체를 찾아보라는 취지다.



'SK, LG 배터리 기밀로 10년 벌었다' 돌직구 날린 美 ITC [재계 인사이드]

강대강 대치...합의는?

그렇다면 양사 합의는 어떻게 되는 걸까.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콜에서 “ITC 판결 이후 SK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어떠한 물밑 접촉도 없었다는 점을 양측 모두 인정한 것이다.


과연 합의가 가능하긴 한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재로서는(적어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 기간 내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측 모두 합의의 필요성을 알고 있고, 합의 없이는 사업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점 때문에 종국에는 합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많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강대강 싸움이 펼쳐지고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합의금 액수에 대한 입장 차가 너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컨콜에서 “지난 10년 간 연구개발(R&D)과 관련해 지출한 비용과 투자 금액이 약 5조3,000억원, 시설투자까지 포함하면 약 20조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이어 “SK가 영업비밀을 훔침으로써 R&D 관련해서만 최소 5조3,000억원을 절감하는 등 부정한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을 ITC 판결로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LG 측은 합의금으로 2조5,000억~3조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이든, 지분이든, 향후 매출에 대한 일정 비율의 로열티든 합의금 총액만 맞으면 이런 수단은 혼합해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게 LG 입장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5,000억원 이하를 합의금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LG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이 공개적으로 ITC 최종판결 자체를 불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결 내용에 대한 양측의 공통된 인식은 이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컨콜에서 “SK가 영업비밀 침해 인정 없이 그냥 합의금만 맞으면 합의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기본적으로 (SK가) ITC 결정문을 존중해야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ITC 최종판결 의견서까지 공개됐는데, 어느 정도 이것을 인정하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LG가 SK에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진정성 있게 ITC 판결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의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