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인수합병(M&A)업계에는 오랜만에 조 단위 이상의 대형 매물이 등장하며 시장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바로 국내 사모펀드(PEF)운용사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글랜우드PE)가 내놓은 PI첨단소재(178920)입니다. 특히 글로벌 화학 기업 솔베이(Solvey)와 아케마(Arkema)가 롯데케미칼, KCC글라스와 예비적격후보로 선정되며 판이 커졌는데요. 오늘은 다소 낯선 두 후보 솔베이와 아케마에 대해 알아봅니다.
PI첨단소재는 폴리이미드(PI) 필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폴리이미드는 석유에서 뽑아내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데 열안정성이 높은, 즉 열에 강한 고분자 유기화합물이라고 합니다.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아직 시장 자체는 크지 않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 국내외 석유화학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접는 스마트폰, 전기차를 위한 배터리와 전장부품, 반도체 등을 감싸는데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분야는 앞으로 커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솔베이는 벨기에 기업입니다. 이번 인수를 위해 글랜우드와 한 첫 미팅에 본사에서 120명의 직원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높은 관심을 나타낸 것인데요. 솔베이는 화학 교과서에 나오는 ‘솔베이공법’의 창시자 에르네스트 솔베이가 1863년에 세운 유서 깊은 기업입니다. 솔베이공법으로는 유리의 원료인 소다회를 만드는데요. 상장사인 솔베이는 현재 시가총액이 12조원을 넘기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사업 중 하나는 비행기나 자동차, 가스용 파이프 등에 사용하는 고성능 열가소성 폴리머 제조입니다. PI첨단소재 인수 시 연관성이 있는 분야지요.
솔베이는 한국을 연구개발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솔베이는 2014년 이화여대와 특수화학부분 글로벌 본부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솔베이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불소가스를 공급했습니다.
M&A 업계에서 솔베이는 통 큰 투자로 입찰 경쟁에서 승리하는 전략으로 유명합니다. 최소 1조 4000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PI첨단소재 인수전에서 유리할 것으로 보는 이유죠.
반면에 인수전을 끝까지 완주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솔베이의 탈탄소 전략 때문입니다. 솔베이는 지난해 회사 사업을 크게 탄소 배출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으로 나누고 탄소 배출 사업을 구조조정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즉 소다 제조를 포함해 6조원 가까이 되는 탄소 배출 사업을 장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1조원이 훨씬 넘는 PI첨단소재 인수에 전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실제로 솔베이는 지속적으로 구조조정하고 있습니다. 솔베이코리아를 지난해 국내 기업인 케이엔더블유에 매각했습니다. 2020년에는 바스프(BASF)에 폴리이미드 사업을 매각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공이 많을 수록 M&A는 산으로 간다”면서 “첫 회의에 120명이나 참석했다는 것은 책임지는 사람 없이 훈수만 많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과거 솔베이는 아시아에서 한국보다는 중국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 만약 PI첨단소재를 인수한다면 기존 노선을 수정하는 셈이 됩니다.
프랑스 아케마는 2006년 프랑스 토탈의 석유화학 부문이 분사하며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시총 11조원이 넘는 대기업입니다. 운동 선수용 기능성 의류, 신발등에 적용하는 특수 폴리이미드를 생산합니다. 그 밖에 아케마가 만드는 신소재 엘라스토머는 고무의 플라스틱의 중간 형태를 갖는 고분자 물질입니다. 2019년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한 투자설명회에서 열 가소성 수지에 투자 의사가 높다면서 국내 기업 인수 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케마는 솔베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로 확장하기 위한 허브로 한국을 언급해 왔기 때문이죠. 국내에는 진해와 함안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고요, 2015년에는 CJ제일제당과 말레시이아에 유황 화학물질 생산 시설을 지었습니다. 4억 5000만달러(약 5700억원)로 아케마 역사상 가장 큰 투자였습니다.
아케마는 2012년 이후 특수 화학에 집중하기 위해 인수와 매각에 전념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 합작 이외에 2018년 일본의 산업용 접착제 기업 니타 젤라틴을 인수했습니다.
다만 일부 연관성이 있는 사업을 국내기업에 팔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SK종합화학에 폴리머사업을 4400억원에 매각했는데요. PI첨단소재는 SK계열인 SKC와 코오롱의 합작사에서 출발했지만. 구체적인 영역은 다르지만 3년 만에 한국에서 인수에 나서는 셈입니다.
PI첨단소재가 폴리이미드 필름에 관해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고 하지만, 필름에 한정된 비교적 좁은 영역입니다. 글로벌 대기업이 지금껏 뛰어들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1위가 될 수 있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PI필름이 필요한 접는 스마트폰이 보편적인 제품으로 확대된다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겁니다. 이는 PI첨단소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경쟁자가 뛰어드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유럽의 두 대기업이 앞으로 있을 본입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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