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을 붓처럼 쓰는 기업이 있다. 900g 무게에 한 손에 꽉 잡을 수 있는 크기의 소형 무인기 수백, 수천 대를 밤하늘에 띄우고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 내려간다. 글씨 다음은 그림이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부터 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까지 그릴 수 있는 작품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드론 1만 대를 동시에 날려 기네스 신기록을 수립했다. 드론 1만 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4개의 그림을 밤하늘에 수놓는 장관이 펼쳐졌다. 수년째 글로벌 드론 라이트쇼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스타트업 유비파이의 이야기다.
27일 서울 관악구 유비파이 사무실에서 만난 임현 유비파이 대표는 드론 라이트쇼 1위 비결을 묻자 “일단 드론 1만 대를 동시에 날릴 수 있는 회사가 유비파이를 포함해 전 세계에 4곳 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임 대표는 “이 중 3개 기업은 중국 업체인데 이들이 드론쇼에서 보여주는 작품은 창의성이 부족하다”며 “유비파이는 드론쇼 도안 제작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인정 기업부설 창작 연구소를 세우는 등 비행 기술은 물론 독창적인 쇼 콘텐츠 역량까지 갖춘 게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설립된 유비파이는 군집 비행 제어 기술 내재화와 창의적인 드론쇼 콘텐츠를 내세우며 전세계인을 매료시켰다. 창업 초기 경주용 드론을 만들던 회사가 드론쇼라는 사업 아이템에 눈독을 들인 첫 시점은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던 날이다. 당시 인텔이 드론 1219대를 평창 밤하늘에 띄워 오륜기를 만드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 모습을 생중계 방송으로 보던 임 대표는 ‘드론쇼에 쓰일 드론 기체를 만들면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사업의 키를 틀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부터 제품 개발에 돌입해 2019년 1월에 지금의 유비파이 대표 제품인 드론쇼 최적화 무인기 ‘IFO’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유비파이는 자체 기체를 만들면서 드론쇼를 디자인하는 소프트웨어 연구도 시작했다. 회사는 2019년부터 ‘라이트쇼 디자이너’라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써오고 있다. 해당 소프트웨어는 드론쇼에 최적화된 군집 드론 디자인 시스템이다. 임 대표는 “드론쇼를 위해 드론 기체와 디자인 도구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한 곳은 유비파이가 유일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외부 기술을 도입한 게 아니라 직접 내재화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사업 경쟁력의 차이를 고객들이 알아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임 대표의 말처럼 유비파이는 드론쇼 사업에 진출한 직후부터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외에서 드론쇼 공연 사업을 직접 맡아 활발히 수행 중이다. 유비파이의 대표 공연은 매주 토요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리는 ‘광안리M드론라이트쇼’다. 유비파이는 3년째 드론쇼 주관 사업자로 참여하는 중이다. 임 대표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부산에 내려가 공연 준비 상황을 점검할 정도로 광안리M드론라이트쇼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막론하고 바닷바람이 세게 부는 곳에서 매번 정시에 맞춰 공연을 진행하는 게 보통 노하우로는 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비파이의 드론은 인기 가수 콘서트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예 기획사들이 콘서트에 이채로운 볼거리를 더하는 요소로 드론쇼를 찾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영국의 유명 록밴드 오아시스의 내한 공연에서도 유비파이의 드론이 하늘에 오아시스 로고를 띄우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도 유비파이는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와 스트레이 키즈의 월드 투어 공연에도 참여했다.
해외에선 드론쇼를 맡기는 고객사는 물론 유비파이의 드론을 직접 구매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 유비파이의 지난해 매출이 170억 원가량인데 이 중 60% 이상이 드론 제품 수출 매출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14개국에 드론 1만 대를 판매했다. 임 대표는 “해외에선 100대 미만으로 제품을 사는 중소형 드론쇼 업체들 사이에서 IFO의 인기가 많은데 우리 제품 덕분에 자신들의 사업이 성공했다며 고맙다고 따로 연락을 주기도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드론쇼 시장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유비파이는 다음 사업 개척지로 방위산업 시장을 내다보고 있다. 임 대표는 “한국과 미국에서 공통으로 포착되는 동향이 정부가 군수 드론 사업을 발주하며 기존 대형 방산 업체 대신 중소형 업체 제품 위주로 받아들이려 한다”며 “그야말로 새 판이 짜인 셈”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방산 항목에서 드론 사업자의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는 발주량 및 납품 기한 준수와 납품 기체의 품질 관리일 것”이라며 “이 모든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곳이 유비파이”라고 단언했다. 현재 2만 대 수준인 연간 드론 생산량을 2배까지 늘린다는 게 유비파이의 목표다.
또한 임 대표는 “올해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발발하고 공급망 리스크가 불거졌는데 이게 군수 드론 납품 업체들에도 매우 치명적”이라며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드론을 제조하는 회사가 방산 업체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비파이도 기존에 공급망을 부품 단위에서 신경 썼다면 이제 소재 단위까지 공급망 정상 여부를 늘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임 대표는 후배 드론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재 대다수 드론 스타트업들은 불확실한 매출 구조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가정용 제품 시장은 DJI 등 중국 업체들이 석권한 상태다. 이에 국내 스타트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군수용 드론을 주 제품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본격적인 매출은 요원하다. 정부의 군용 드론 사업 발주 현황만 바라보는 게 대부분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사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대규모 매출을 일으키는 스타트업은 유비파이를 포함해 극소수라고 평가받는다.
임 대표는 정형화된 성공 방식을 좇기보다 시장 수요를 직접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창업자들이 쉽게 함정에 빠지는 게 시장 조사 단계에서 힘을 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잠재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시장은 생기기 마련”이라며 “유비파이 역시 사업 초기 시험 단계의 여러 제품을 내놓은 후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고 다른 제품을 개발하는 등 계획보다 시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임 대표는 실제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뚜렷한 확신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는 “군집 드론으로 유비파이의 방향성을 바꾸고 처음 투자금을 모집할 때 모든 투자사가 ‘이미 인텔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까지 맡았는데 같은 사업에서 생존할 수 있겠느냐’고 핀잔을 줬다”면서도 ”결국 인텔이 군집 드론 사업을 접고 유비파이만 살아남았듯이 끝내 목표한 분야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입증하는 게 스타트업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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