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거래소(HKEX)가 결제주기 단축(T+1)과 호가단위(Tick Size) 축소, 거래시간 연장 검토 등 시장 인프라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이 결제주기를 단축하며 글로벌 거래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거래 효율성을 높여 국제 금융허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유태석 홍콩거래소 글로벌 고객개발본부장은 8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내년 하반기면 전 세계 시가총액의 약 90%가 T+1 결제 체계에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글로벌 결제 관행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아시아 시장도 투자자의 자금 조달과 운용 효율 측면에서 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면 아시아 자본시장의 경쟁력과 연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거래소는 올해 4월 현행 T+2인 현금시장 결제주기를 T+1으로 단축하는 방안에 대한 시장 의견 수렴에 착수했다. 시장 준비와 규제 승인 등을 거쳐 내년 4분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 본부장은 T+1 도입이 단순히 결제기간을 하루 줄이는 작업이 아니라 글로벌 자금 흐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글로벌 시장이 T+1으로 전환하면 T+2 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운용할 때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해지고 운영 효율도 떨어질 수 있다”며 “시장 간 연결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제주기 단축과 함께 거래 환경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홍콩거래소는 올해 하반기 호가단위를 축소해 최소 매수·매도 호가 간격을 줄일 계획이다. 유 본부장은 “호가단위 축소는 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거래를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거래시간 연장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T+1 결제 체계 구축과 주권 전산화가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유 본부장은 “거래시간 연장은 중장기 과제”라며 “우선 T+1 결제 체계 도입과 전산화를 마무리한 뒤 거래시간 연장 가능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거래시간 확대 역시 시장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유 본부장은 “한국 증시는 오후 3시 30분, 홍콩 증시는 한국시간 기준 오후 5시에 거래를 마친다”며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와 차익거래자, 마켓메이커에게는 이 90분의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거래시간이 비슷해질수록 시장 간 거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란 의미다.
홍콩거래소가 이처럼 시장 인프라 개편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빠르게 늘어나는 거래 규모와 중국 본토 자금이 있다. 올해 상반기 홍콩 증시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2830억 홍콩달러(약 약 54조 336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신규 상장 기업은 87개로 지난해보다 98% 늘었고 기업공개(IPO) 조달 규모는 2102억 홍콩달러(약 40조 4000억 원)로 92% 증가했다. ETF 시장도 성장세가 뚜렷하다. 상반기 ETF 일평균 거래대금은 전년보다 17% 증가했고 레버리지·인버스 상품도 110% 급증했다.
유 본부장은 “현재 홍콩 시장 거래의 20~30%는 중국 본토 투자자가 차지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신경제 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자금의 해외 투자 수요 확대가 홍콩 시장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콩거래소는 최근 한국거래소와 공동으로 ‘HKEX-KRX 반도체지수’를 개발했다. 유 본부장은 “이 지수를 추종하는 홍콩 상장 ETF를 강구퉁(Stock Connect)을 통해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매수하면 한국 반도체 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라며 “홍콩 ETF가 중국 자금을 한국 시장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현재 중국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는 쉽지 않지만 홍콩 상장 ETF를 활용하면 한국 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다”며 “홍콩이 중국 자금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도 이 같은 크로스보더 상품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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