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공포에 짓눌렸던 반도체 투자심리가 미국 빅테크발 훈풍을 계기로 급격히 되살아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어닝서프라이즈’를 계기로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우려가 다시 완화된 데다 최근 시장을 압박했던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강제 매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주가가 천장을 뚫어냈다. 다만 최근 과도했던 낙폭을 되돌리는 기술적 반등 성격도 크다는 점에서 추세 전환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29~30일 이틀간 3조 4010억 원을 팔아치우며 항복 매도를 했던 개인은 폭락 뒤 코스피가 17.91% 급등하자 역대 최대인 8조 2840억 원의 매물을 쏟아냈다. 반면 과도한 낙폭에 따른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진입에 외국인은 역대 최대 규모인 7조 2773억 원을 사들이며 지수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외국인과 개인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놓고 정반대 베팅을 했다.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3조 6061억 원어치 순매수한 데 이어 삼성전자 2조 1168억 원, SK스퀘어 3361억 원, 삼성전자우 2646억 원, 삼성전기 2217억 원을 사들였다. 반면 개인은 SK하이닉스를 4조 1036억 원어치 순매도했고 삼성전자(-2조 9584억 원), SK스퀘어(-3058억 원), 삼성전자우(-3011억 원), 삼성전기(-2987억 원)를 줄줄이 팔아치웠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비이성적으로 지수가 급락한 데 따른 갭을 메우는 과정으로, 펀더멘털과 기술적 반등이 함께 작용했다”며 “반대매매 등으로 개인이 팔아치운 물량을 외국인이 적극적으로 받아내 모멘텀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집중 사들인 삼성전자는 26.81% 상승 마감했고 시총 2~4위 SK하이닉스·SK스퀘어·삼성전기는 일제히 가격제한폭까지 도달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25% 안팎 급등한 채 거래를 시작하면서 개장 직후 2분간 단일가 매매로 전환하는 정적 변동성완화장치(VI)가 발동되기도 했다. 해당 종목들을 주로 담은 국내 주요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도 줄줄이 급등했다.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와 ‘TIGER 반도체TOP10’ ‘TIGER 반도체’ ‘SOL AI반도체TOP2플러스’ 등이 상장 이후 처음으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날 코스피 폭등은 미국 빅테크의 실적 발표를 계기로 다시 AI 투자 사이클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힘이 실린 결과로 해석된다. 최근 글로벌 증시는 AI 인프라 투자가 정점을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급격한 조정을 받아왔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 기대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국내 증시에도 하방 압력을 가했던 AI 서비스 수익성 논란을 일부 잠재운 데 이어 아마존도 AI 관련 설비투자(Capex)를 지속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빅테크 실적 발표에서 확인되듯 AI발 클라우드 수요가 예상보다 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점이 다시 확인됐고 그만큼 반도체 시황 강세도 이어지고 있다”며 “급반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기 때문에 긍정적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최근 글로벌 AI 반도체주의 급락 과정에서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으로 펀더멘털과 무관한 강제 매도 물량이 쏟아졌지만 최근에는 상당 부분 소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오픈AI 출신 연구원 레오폴드 애션브레너가 설립한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어웨어니스’가 마진콜 압박 속에 약 160억 달러 규모의 AI 관련 주식 포트폴리오를 처분했다. 이를 계기로 AI 반도체주를 짓눌렀던 수급 부담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아울러 전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주식 49억 원어치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점도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불어넣었다.
최근 실탄이 떨어진 국내 투자자들의 ‘항복성 투매’ 속에 외국인의 대규모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단 하루 급등만으로 바닥을 확인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등 지수의 변동성이 극도로 확대된 상황에서 이번 외국인의 역대급 매수세는 낙폭 과대에 따른 저가 매수, ‘쇼트 커버’ 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2거래일 연속 순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매수 전환’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며 “추세적 전환 여부는 향후 며칠간의 수급 흐름과 반도체 업황을 확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짚었다.
투자자들에게는 단기 반등에 휩쓸려 무리하게 추격 매수에 나서기보다 변동성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랐다. 신승진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그동안 낙폭이 과대했던 만큼 기술적으로 되돌림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라며 “투자자 대부분 현금 여력이 충분치 않겠지만 변동장에서 과도한 레버리지성 투자를 지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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