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유지되던 회사채 발행세가 꺾인 요인은 지난해 2~3%대에 머물던 회사채 금리가 올해 4% 중후반까지 치솟으면서 기업들이 자금 조달 방식에 변화를 준 영향이 크다. 특히 올해 들어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고유가와 반도체 호황이 맞물리며 물가 상승 압력이 국고채와 시장금리를 함께 밀어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뿐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일본·유럽의 재정·통화 정책 불확실성으로 글로벌 장기국채 금리마저 요동치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AA-급 회사채 금리는 지난달 24일 4.651%까지 상승하며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해당 금리가 4.6% 수준까지 오른 것은 2023년 11월 이후 약 2년 8개월 만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만 100bp(bp=0.01%포인트) 넘게 치솟으며 4%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채 금리 급등은 발행 경색으로 이어졌다. 공모 회사채 시장 큰손으로 꼽히는 대기업들의 발행이 급감하면서 시장 전반이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 대기업의 공모 회사채 발행액은 29조 203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2조 9760억 원) 대비 32%가량 쪼그라들었다. 이는 2024년(37조 7715억 원), 2023년(34조 666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규모로 4년 만의 최저 수치다.
실제로 발행을 주저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적지 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내 약 3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갚아야 하지만 시장금리가 높은 관계로 현재까지 차환 발행은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6월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SSG닷컴 지분을 사들인 신세계그룹은 매입 실탄을 조달하는 차원에서 증권사들로부터 회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제안받았으나 결국 선택지에서 지웠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발행을 준비 중인 AA0급 이상 대기업들이 거의 없다”며 “증권사들도 영업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침체돼 있는 시장 분위기를 염려해 기업들도 선뜻 결정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채 발행 확대에 따른 수급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회사채 시장 위축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전히 증시로 자금이 쏠리고 있는 점도 회사채 시장 회복을 늦추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 따른 재정지출 증가가 국고채 공급 확대로 이어져 장기 금리 상승, 더 나아가 채권시장 전반에 수급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회사채 시장이 2022년 레고랜드 사태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경색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올해 회사채 시장 침체가 체감적으로 레고랜드 사태 때보다 심각한 것 같다”며 “주가 상승과 반도체 수출 호조로 기업들의 자금 여력이 받쳐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채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차입 방식을 선회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짚었다.
회사채 발행을 내년 초로 미루는 기업들도 속속 관측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자금을 집행하기 시작하는 1~2월로 발행 시기를 잡아 지금보다 풍부한 유동성을 거머쥐겠다는 계획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등을 명목으로 지난해까지 활발하게 회사채를 찍은 LX그룹의 경우 올해는 미루고 내년 초 발행을 재개하는 선택지에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기업마다 예정된 회사채 발행을 계속 미룬다면 내년 초 혼선이 우려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초 효과를 누리려는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기관 자금이 분산돼 기대만큼의 수요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에도 금리 인상과 수급 부담이 겹쳐 연초 효과가 일부 희석된 측면이 뚜렷했다”며 “중동 전쟁과 같이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발행을 마냥 미루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달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와 2027년도 예산안 발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통화 및 재정 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완화된다면 금리 불확실성과 함께 채권시장도 회복세에 접어들 수 있다. 박문현 KB증권 연구원은 “이달 말로 갈수록 금통위와 예산안 발표를 앞둔 관망세가 강화되면서 거래량이 감소하고 시장금리 역시 박스권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주요 이벤트를 무난하게 소화해 불확실성이 완화될 경우 시장 온기가 만기와 신용등급을 달리하며 순차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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