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일대를 장기 본사 거점으로 삼는 기업이 늘고 있다. 올해 들어 LG생활건강(051900)이 광화문에서 본사를 옮겼고, CJ올리브영은 빌려 쓰던 서울역 앞 건물을 사들여 자가 사옥으로 전환했다. 메리츠화재는 두 번째 사옥 건립을 추진 중인 봉래2지구의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았다. 교통 인프라에 비해 업무 공간이 부족했던 서울역 권역이 도심 업무지구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은 지난해 서울역 인근 동자동 옛 KDB생명타워를 6744억 원에 매입했다. 지하 9층~지상 30층, 연면적 약 8만 2000㎡ 규모다. 이 회사는 2021년부터 이 건물 일부 층을 빌려 본사로 써오다 매입을 통해 임차 사옥에서 자가 사옥 체제로 전환했다. 올해 5월에는 건물 외벽 간판을 회사 로고로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지상 16개 층을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생활건강은 올해 15년 간 이어온 광화문 시대를 마치고 서울역 인근 LG서울역빌딩으로 본사를 옮겼다. LG가 옛 STX남산타워였던 이 건물을 2016년 인수해 계열사 사옥으로 활용해 온 곳이다. 당시 거래가는 약 3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제너시스BBQ그룹은 2024년 8월 남대문로5가 일대 5개 필지, 약 990㎡ 규모의 토지를 순차적으로 매입했다. 회사 측은 신사옥 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이라고 밝힌 바 있다. BBQ 본사는 2002년부터 송파구 문정동에 있다. 올해 6월에는 BBQ가 발주한 남대문로5가 17-1번지 일대 철거공사에서 석면 해체·제거 작업이 진행됐다.
메리츠화재는 2024년 서울 중구 봉래동 1지구 신사옥으로 핵심 부서를 이전한 데 이어, 인접한 봉래구역 제2지구에 두 번째 사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초 사업시행계획인가가 고시됐으며 지하 8층~지상 31층, 연면적 약 6만 2000㎡ 규모의 업무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한화그룹이 주도하는 서울역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에서도 오피스동 일부를 그룹 사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역의 입지 경쟁력으로는 광역교통망이 꼽힌다. 서울역은 KTX와 공항철도, 지하철 1·4호선, 경의중앙선이 모이는 교통 거점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운정중앙~서울역 구간이 2024년 말 개통되면서 수도권 서북부와 20분대로 연결됐고, 서울역~수서 구간이 연결되면 동탄 방면 접근성도 개선된다.
현대캐피탈도 2022년 여의도에서 서울역 인근 그랜드센트럴로 본사를 옮기며 ‘서울역 시대’를 열었고, 대홍기획은 올해 초 자회사 스푼을 연세세브란스빌딩에 있는 본사로 이전해 사옥을 통합했다.
그동안 서울역 권역의 대형 신축 오피스 공급은 제한적이었다. 서울스퀘어와 LG서울역빌딩, 그랜드센트럴 등 대형 업무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대규모 조직의 이전 수요를 새로 받아낼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교통이라는 조건은 오래전부터 갖춰져 있었지만 새로운 업무 공간의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다만 최근에는 기업들의 본사 거점화 움직임과 함께 대형 오피스 개발과 기관 자본의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역 북측 순화동·서소문동 일대에서는 초대형 오피스 공사가 동시다발로 진행 중이다. 옛 삼성생명 서소문빌딩 부지의 서울역·서대문 1·2구역 제1지구는 연면적 약 24만 9000㎡ 규모로 2030년 6월 준공을 목표로 하며, 저층부에 1100석 규모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 조성된다. 인근 서소문구역 제11·12지구(약 13만 8000㎡)는 2029년 준공 예정이다. 봉래구역 제3지구에서도 SK디앤디가 참여한 리츠가 업무시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가 추진하는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은 서울역 북측 봉래동2가 유휴 철도부지에 연면적 약 33만 7000㎡, 지하 6층~지상 39층 5개 동 규모로 조성된다. 2024년 11월 착공해 2029년 상반기 준공이 목표다. 글로벌 호텔 브랜드 만다린 오리엔탈이 한국 첫 진출지로 이곳을 선택해 2030년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움직임도 뚜렷하다. 한국투자금융지주 계열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올해 3월 서울역 앞 랜드마크 오피스 서울스퀘어를 1조 2800억 원에 인수했다. 남대문로5가 양동구역 제11·12지구 오피스 개발사업은 최근 5000억 원 규모의 본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을 마무리했다. 지하 10층~지상 32층 규모로 KCC건설이 시공을 맡는다.
서울역 사업의 준공 시점은 2029년에서 2030년대 초에 몰려 있다. 북부역세권이 2029년, 서소문구역이 2029년, 서울역·서대문 제1지구가 2030년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옛 밀레니엄힐튼서울 부지와 메트로타워·서울로타워 부지를 통합 개발하는 이오타 서울(연면적 약 46만㎡)은 이 권역 최대 규모 사업으로 2032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빌스코리아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도심권역에 프라임급 오피스 26건, 연면적 약 256만㎡가 공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서울역·남대문 권역이 약 29%를 차지한다. 세운·을지로·시청 권역이 53%, 종로·광화문 권역이 18%다.
서울역 권역에서 대형 신축 오피스라는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기업들은 기존 빌딩을 임차하거나 직접 매입하고, 그룹이 보유한 사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본사 거점을 마련해왔다. 2029년 이후에는 신축 대형 오피스가 대거 들어서는 만큼 선택지가 넓어질 전망이다. 대규모 사옥 이전은 후보지 검토부터 계약과 설계 반영, 입주까지 수년이 걸리는 만큼, 이들 자산을 대상으로 한 기업들의 검토도 이미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울역 일대는 교통이라는 하드웨어는 이미 갖췄지만 그에 걸맞은 업무 공간이 부족했던 곳”이라며 “매입이든 이전이든 신축이든 기업들이 이 권역을 장기 거점으로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변화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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