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중동 정세 격화와 국제유가 급등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한 달 반 만에 종가 기준 7000선을 탈환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기대가 반도체주를 밀어올리며 지수를 지지했다. 시장에서는 하이퍼스케일러와의 장기공급계약(LTA) 확산이 반도체 업황의 변동성을 낮추고 실적 가시성을 높이면서 코스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7.12포인트(1.40%) 오른 7051.64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7000선을 넘어선 것은 7월 23일(7096.89) 이후 33거래일 만이다. 앞서 7일과 8일 7000선 문턱에서 미끄러진 뒤 삼세번 만이기도 하다. 코스닥지수도 2.28% 오른 830.37에 거래를 마쳤다.
상승을 이끈 것은 오픈AI의 아스트라 호재와 AI 수요 확산 기대감에 따른 반도체주 강세다. SK하이닉스는 3.51% 오른 185만 6000원에 장을 마감했고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주도 동반 상승했다. 2차전지와 AI 인프라, 광통신 등으로도 매수세가 확산됐다.
다만 개미들이 이날 2조 2874억 원을 포함해 5거래일 연속 16조 8356억 원을 팔아치우며 시장을 떠나는 것은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96조 9863억 원으로 2일 이후 100조 원을 하회하는 상황이다.
코스피가 7000선에 안착해 추가 상승을 이어가려면 단기적인 AI 기대감을 넘어 반도체 업황의 지속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열린 ‘2026 KB금융그룹 코리아 컨퍼런스’에서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이 과거보다 안정적인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김신 KB금융지주 글로벌 투자전략가는 “반도체 산업은 좀 더 안정적이고 주기의 영향을 덜 받는 시장구조로 과거와 다른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은 장기공급계약이다. 과거 메모리 산업은 수급 변화에 따라 가격과 실적이 크게 출렁였지만 최근에는 AI 투자를 주도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필요한 메모리 물량을 장기간 확보하면서 반도체 업체와의 LTA가 확대되고 있다. 일정 수준의 수요가 미리 확보되면서 단기 가격 변동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 또한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반도체 비중이 큰 코스피에도 긍정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변동성이 낮아질수록 코스피 전체 실적 전망의 가시성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김 전략가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TSMC처럼 실적 안정성과 지속성을 높일 경우 주가순자산비율(PBR) 격차도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AI 확산에 따른 구조적인 메모리 수요 증가 역시 사이클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에이전틱 AI가 본격 확산되면 메모리 수요가 현재의 약 3배,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 단계에서는 10배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신규 생산 시설이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3~4년이 걸려 메모리 공급 부족은 2028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AI 투자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올해 약 40%에서 내년 57%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같은 해 68%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김 센터장은 내년을 기점으로 AI 산업의 이익 중심이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메모리로 이동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이 코스피 이익 전망에 힘을 보탤 것으로 봤다.
다만 위험 요인도 남아 있다. 김 전략가는 AI 반도체 수요가 소수 대형 하이퍼스케일러에 집중돼 있어 이들의 투자 축소가 다시 업황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증시의 높은 변동성도 추가 리레이팅의 걸림돌로 지목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는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기보다 시장 변동성과 투자자들의 집단 심리 영향이 크다고 본다”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없었다면 상당히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랠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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