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다시 채권 시장에 대규모 반도체 머니를 푼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에 3조 원 규모의 자금을 위탁해 다음달 초부터 은행계 카드사 채권을 사들일 것으로 관측된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과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덕에 금융권 예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현금을 축적한 상태라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채권 투자 반경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1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자금 위탁 운용사를 선정하기 위해 NH아문디·신한·우리·미래·한투·KB자산운용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6개사 모두 담당 운용사로 선정되는 것이 유력한 상황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운용사마다 5000억 원씩 자금을 위탁받아 다음 달 초부터 총 3조 원 규모의 채권 투자가 본격화될 전망다.
3조 원 상당의 반도체 머니는 신용등급 AA0급 이상 카드채 매입에 우선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KB국민카드·신한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 등 은행계 카드사가 발행한 채권이 주요 타깃으로 정해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6~7월에도 은행계 카드사뿐만 아니라 삼성·현대·비씨카드 등이 발행한 채권을 포트폴리오에 담기 위해 조 단위 현금을 쏟아부은 바 있다.
이로써 카드사들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7~8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3.00%까지 인상한 뒤로 카드채 발행 금리는 종전 3%대에서 4% 중후반까지 치솟았다. 가령 하나카드의 경우 올해 2월까지만 해도 3년물 발행 금리는 3.75%였지만 이날 발행이 예정된 동일 만기 카드채 금리는 4.45%까지 올라왔다. 그동안 카드채를 사가던 기관 투자자들도 이탈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의 자금 유입은 고공행진하던 발행 금리를 진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동안 위축됐던 SK하이닉스의 채권 매수세가 재차 대규모 투자 스탠스로 전환된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상반기까지 매주 조 단위 자금을 채권에 투자했지만 지난달 19일 4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발표한 직후 채권 투자도 덩달아 소강 상태에 접어 들었다. 주주환원에 대규모 실탄을 쓰기로 한 만큼 채권을 담는 데 적극적으로 자금을 집행하기는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채권 투자를 진두지휘하는 인력도 소수였던 탓에 맨파워를 확충하기까지 일시적인 수급 공백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평도 나왔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일시적인 채권 매수 공백에도 투자 반경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올해 6~7월 한창 채권을 사들일 당시에는 만기 2~3년 채권에 집중 투자한 반면, 이번에는 최장 4년 만기 채권도 담을 수 있다는 의사를 운용사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3~4년 동안 자금이 묶여도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면서 “조건만 맞으면 민간 대기업 회사채를 매입하는 시나리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상반기 연결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현금·현금성 자산은 총 87조 9579억 원으로 집계된다.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15조 1044억 원)보다 약 8배 늘어난 134조 2685억 원으로 곳간에 쌓이는 현금은 당분간 빠른 속도로 축적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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