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투자은행(IB)으로 꼽히는 다이와증권이 한국 채권 사업을 접은 것으로 파악됐다. 2011년 금융위원회 인가 이후 15년 동안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해외 채권 발행을 주관했지만 실적 공백이 장기화된 것이 직접적인 철수 배경으로 꼽힌다. 소수의 미국·유럽계 IB가 국내 자본시장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자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본계 금융사가 속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IB 업계에 따르면 다이와증권은 부채자본시장(DCM) 사업을 담당하는 코리아 데스크를 전면 철수한 상태다. 다이와증권 한국 법인인 다이와증권캐피탈마켓코리아는 2011년 금융투자업 본인가를 받은 뒤 기업들의 외화채 발행 주관을 포함해 주식자본시장(ECM), 인수합병(M&A) 자문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사업 철수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실적 부진이 꼽힌다. 다이와증권은 지난해 신한은행·KT 등이 발행하는 사무라이본드(해외에서 발행하는 엔화 채권)를 주관한 후 관련 실적을 쌓지 못했다. 올 초 SK㈜가 SK바이오팜 지분 약 14%를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매각할 당시 다이와증권이 외국계 IB로는 이례적으로 물량 인수를 제안했던 것도 업계에서는 실적 공백을 메우려는 움직임으로 비쳤다.
보다 근본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에서 사업을 계속 전개하기에는 메리트가 부족하다는 공감대도 이탈을 부추긴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 전반적으로 소수의 IB가 독점하는 구조가 뿌리내리자 그 외의 증권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한국물(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 주관 순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HSBC·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크레디아그리콜이 차례로 톱3를 수성하는 가운데 상위 3사의 점유율 합계는 2년 연속 40%를 돌파했다. 아시아에서 해외 채권을 주로 발행하는 중국·일본·호주·싱가포르를 통틀어 가장 높은 독과점 비율로 나타났다.
몇몇 외국계 IB가 대부분의 파이를 가져가는 구조는 자본시장 내 다른 영역에서도 숱하게 관측된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대형 기업공개(IPO) 입찰에는 다이와증권·노무라금융투자·홍콩상하이증권 등도 주관 지위를 따내고자 국내외 증권사들과 경합을 이뤘다. 그러나 대규모 IPO가 급감한 뒤로는 씨티·UBS·JP모건·모건스탠리 등 소수만 시장에 남아 경쟁하는 구도가 고착화됐다. 이는 M&A와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시장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다.
다이와증권뿐 아니라 일본계 증권사 전체적으로 한국 사업에 힘을 빼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말 다이와증권과 노무라금융투자의 임직원 수는 각각 66명, 10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0명, 114명) 대비 감소했다. 미즈호증권의 경우 2명 늘었지만 총 14명에 그쳤다. 같은 기간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JP모건 등이 인원수를 늘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 주요 발행국 중 주관사 독과점이 가장 심한 국가가 한국”이라면서 “발행사 입장에서는 조달 다변화를 저해할 수 있고 자본시장 전체적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부합하지 않아 투자자들도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수의 외국계 금융사도 국내 사업을 축소하거나 재편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 법인을 외국은행 지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국은행 지점으로 전환하면 본점과 한 몸으로 영업하면서 국내 법인에 요구되는 별도의 이사회와 자본 관리 등 경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험 업계에서도 외국계 금융사의 한국 시장 철수가 이어졌다. 2020년 미국 푸르덴셜파이낸셜은 푸르덴셜생명을 KB금융에 2조 2650억 원에 매각하며 한국 보험 시장에서 철수했다. 저금리와 국내 보험 시장 성장 둔화 속에 미국 본사가 해외 사업의 자본 효율성을 재검토하면서 매각 대상에 오른 경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보험 시장의 성장성이 둔화된 상황에서 규제와 자본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어 외국계 보험사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확대할 유인이 크지 않다”며 “실제로 한국 사업의 축소나 매각 가능성을 검토하는 외국계 보험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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