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법 발달과 잇따른 상법 개정으로 기업 재판이 복잡해지고 있는 만큼 이를 전담할 상사전문법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는 약 3년마다 순환하는 판사들이 관련 재판을 맡고 있는 데다, 재판부의 행정·일반 재판 업무가 과중해 전문성을 갖춘 기업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주주 충실의무와 상사특별법원 도입’ 세미나를 개최하고 상사전문법원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발제자로 나선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상사, 투자자 보호 분쟁은 사실관계 파악이 복잡하고 법적 판단이 어렵다”며 “법관의 전문성을 높여 재판 완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남 인천지방법원 판사는 “상사 사건은 경제·경영·회계학과 금융 거래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며 “별도의 전문법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특허·행정·회생·가정법원 등 4개의 전문 법원을 두고 있다. 이 중 특허 재판은 기초과학·공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회생 재판은 여러 채권자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영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기업 관련 분쟁을 다루는 상사 재판도 고도화되는 금융 기법과 연이은 상법 개정, 기업 업무의 고도화 등으로 높은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통상 3년 주기로 보직을 변경하는 판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주요 지방·고등법원에 설치된 상사·기업 전담재판부에서 근무하는 판사들도 근무 이력이 짧고 일반 사건 담당, 행정 업무를 병행한다.
세계 각국은 상사 재판의 특수성을 고려해 전담 법원을 두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으로 현지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델라웨어주 형평법원 등에서 회사법 사건만을 전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텔아비브 지방법원에 회사법·증권법 사건만을 담당하는 전문법관 3명으로 구성된 전문재판부를 설치했다. 전문법관들로 재판 전문성이 높아지다보니 소송 진행 기간은 전문재판부 설립 전 4.39년에서 1.74년으로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상사전문법원 도입 필요성을 의료 서비스에 빗대 주장한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면 전문의로서 십수 년 이상 경력을 쌓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만큼, 복잡다단한 기업 분쟁에 대한 법원 판단 또한 장기간 관련 재판을 담당해온 법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우리 법원이 법관의 인사 형평성을 고려해 2~3년마다 분야를 바꿔가며 순환 배치를 실시하는 것보다 상사전문법원 설치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편익이 커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상사 사건처럼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전문 법관을 장기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영국, 네덜란드, 대만, 싱가포르 등 전문적인 상사 재판 조직을 둔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레터 구독